헬싱키에는 침묵(?)채플이 있다

길을 갈 때 개미 한마리가 보여도 우리는 피하기 마련이다. 
속도가 느려질수록 작은 것들이 보인다. 
KTX를 타고가다가 무궁화호로 갈아탔을때 묘한 즐거움에 승차했던 경험이 있다. 
느리게 움직이는 기차안에서는 창밖의 경운기, 벼의 낫알, 심지어 도둑고양이까지 모두가 보였다. 
북유럽의 사람들은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다이렉트 노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이렉트 교통망은 속도를 동반하는 대신, 작은 도시들을 희생시킨다.

한국과 강릉간의 다이렉트 도로가 생긴 이후에 작은 국도에 있던 가게들은 지나가던 차들이 줄었다고 울상이다. 
차로 이동하는 사람으로서도 섭섭하긴 마찬가지다. 
국도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이 시간이 걸리는 국도를 지나면서 막국수도 먹고, 동네 절도 들리고 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 느린 속도에서 비롯되는 체험 모두가, 빠른 고속도로가 줄 수 없는 느리고 소중한 행복들이었다. 
뻥 뚫린 고속도로를 오가면서는 고작해야 어느 휴게소를 들어갈지 정하는게 전부다.

이제 고속도로 이야기다. 
누구나 길을 가면서 개미 한마리를 살피고, 산길을 가면서 무당벌레 한마리를 살피던 사람들이 고속도로에 들어서면 돌변한다. 
속도의 법칙에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100km로 달리는 속도가 되면 날벌레, 심지어는 야생동물이 나타나더라도 로드킬을 무릅쓰고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다.

속도의 패러다임에서는 가로막는 대상은 그저 속도를 방해하는 장애물일 뿐이다.


사람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속도가 달라졌을 뿐이다. 속도는 잔인함을 동반한다.


산업시대를 지나온 한국인에게 가장 잘 듣는 단어는 빨리 빨리다.

아침에도 빨리빨리 점심식사도 빨리빨리, 저녁퇴근도 빨리빨리, 테이블에 수저세팅도 빨리빨리. 
빨리 빨리 하루가 갔는데 저녁에 찬찬히 생각해보면 별로 한게 없는 것 같다. 
빨리 빨리 이전에 정말 빨리해야 하는지 생각의 시간이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경영의 구루, 피터 드러커는 '가장 일을 빨리 하는 방법은 안한일을 골라내는 것이다'라고 한 적이 있다.

어떤 일을 아무리 빨리해도 안하는 것보다 빠르진 않다.  
작은 것들은 빠르다. 사람보다 쥐가 빠르고 쥐보다는 바퀴벌레가 빠르며 그보다는 날벌레가 더 빠르다. 
작은 쥐의 심장은 사람보다 무려 수십배나 빨리 뛴다. 
작은 강아지를 품에 안고 심장박동소리를 느껴보라. 평상시에도 마치 사람이 놀랐을 때처럼 빨리 뛴다. 작아지면 빨라진다. 불안해서, 위축되어 작아진 사람의 심장도 빨리지며 행동이 좌불안석으로 어쩔 줄 모르고 빨라진다.

속도가 해로운 또다른 이유는 대부분의 것들이 자신의 속도가 있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그는 어떤 것은 당장, 또 다른 것은 천천히, 개혁을 이끌어 갔다. 
심지어 어떤 일은 다음 황제가 될 사람에게 미루기도 했다.
만사에 다 때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디오의 <로마사> 중 아우구스투스 황제 편 -


예를 들어 가르치는 것에는 시간이 걸린다.
빠른리더가 좋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가르치는게 들어가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대단하다고 믿는 사람은 좋은 선생님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모든 것을 그들만큼 빠르게 진행되기를 원한다. 
물론 그들에게도 할말은 많다. 게으름을 피우면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답답한데 어떻게 그냥 보고 있느냐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이 후딱 해치워버린다. 
하지만 김연아 선수가 못한다고 해서 브라이언 오서가 아이스링크에 들어설 수 없다. 
타자가 배트를 잘 못휘두른다고 해도, 감독이 타석에 들어설 수 없다. 숙련공이 혼자서 한 일은 아무리 빨라도 진정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반면 혼자서 2시간에 할 일을 후배를  가르치느라 4시간에 했다고 하면 그것은 보람찬 일이다.  
느리더라도 그것을 배우는 다른  신입이 있다면  공방은 앞으로 수십년 더 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유럽의 문화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바로 이 속도다.

북유럽의 문화는 보통 느리다. 
호텔에서의 아침 식사도 보통 9시가 넘어야 사람들이 천천히 내려온다.



심지어 핀란드 헬싱키에서는 번잡한 도심 한가운데 나무로 만든 채플이 있다. 

채플의 이름은 침묵의 채플이다. 
바쁜 광장을 오가다가도 채플안에 들어가기도하며 침묵에 빠진다.

핀란드 헬싱키의 침묵 채플

핀란드 사람은 침묵을 금처럼 여기며 침묵속에서 자신의 속도를 다시 찾는다. 
한국 사람이 보면 답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우리의 일상이 늘 빨라야 한다는 것도 이상한 것이다. 
대부분의 것들은 일단 느리다. 
사실 살펴보면 느린 것이 아니라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다. 
특히 소중한 것에는 더 느려져야 한다. 
아이의 눈을 살펴보는 시간은 느리다. 
얼굴을 살펴보고 미소를 지어주고 아이의 눈동자에서 하루의 기분을 알아채려면 빨라서는 곤란하다. 
커피를 음미하는 시간도 느리다. 갓볶은 커피의 향을 느끼고 아침의 바람을 느끼고 삶의 순간을 느끼려면 진정 빨라서는 곤란하다.

북유럽의 문화는 속도조절의 문화라고 보는 것이 좋다. 빨라야 할 것과 느려야 할 것을 구분하는데 달인들이다.

하지 않아야 할 것을 안하기 때문에 느린 것 같지만 빠르다. 
북유럽에서 찬 음식이 많은 이유는 더운 음식 준비에 들어가는 불필요한 시간을 없애기 위해서다. 
간단하게 만들수 있는 찬음식으로 식사준비 시간을 줄이고 오히려 가족간의 대화에 집중한다. 
북유럽의 디자인이나 문화를 살펴보면 심플하고 미니멀리즘 적인 성격이 지배적이다. 
할 것만 하고 꼭 필요한 것을 제대로 한다. 그래서 그들은 느린것 같지만 결국 가장 빠르다. 
오늘날 생산효율성에서 세계 1,2위를 다투는 나라들은 가장 느리게 보이는 북유럽의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빨리 빨리는 한국인의 DNA다. 포기할 이유는 전혀 없다.

다만 빨리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늑림을 익힌다면,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명성과 더불어, 가장 오랫동안 길게 가는 사람들이라는 타이틀도 얻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