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기업은 왜 가격경쟁을 좋아하는가

"차이나 프라이스(China price)라는 단어를 혹 들어보셨나요?"


뉴욕타임즈는 미국기업이 가장 무시무시하게 여기는 단어로 차이나 프라이스(China price)를 꼽은 적이 있습니다.

중국식 초저가 전략을 일컫는 단어인데, 미국의 저널리스트 알렉산드라 하니는 '차이나 프라이스'라는 책을 쓰기도 했죠. 
 
최강의 경쟁력을 가진 미국기업을 떨게 한 차이나 프라이스. 
얼마나 가공할 위력이길래 최고 권위지와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이런 말을 했을까요.
그럼 이제 중국으로 가봅니다.

중국 기업가들은 자신의 사업을 전쟁에 비유합니다. 이런 경우는 동양에는 많이 있죠. 우리도 곧잘 비즈니스의 전장 이런말을 쓰니까요. 하지만 중국은 한술 더 뜹니다. 그들은 정말 전쟁같이 격렬하고 극적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자가 진정 승리자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대중들을 화끈한 승부를 좋아합니다. 전쟁에서는 정공법으로 적을 한칼에 쓸어버리는 장수를 무척이나 좋아하죠.
비즈니스에서 한번에 적을 쓸어버리는 상황이 어떤 때일까요?
가장 장쾌하고 극적인 승부는 바로 가격전쟁입니다.

1996년 2월 중국 TV시장에는 소니, 파나소닉, 필립스 등 프리미엄 브랜드와 50여개가 넘는 지역 브랜드가 있었습니다. 시장은 외국산 프리미엄 브랜드와 저가의 지역 브랜드로 양분화되어 있었죠. 중국 소비자들은 외국산을 좋아했습니다. 품질은 별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소비자들은 현지브랜드를 거들떠 보지 않아 눈물을 머금고 박한 마진을 참아내야 하는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은 1996년 말, 하늘높은 줄 모르고 기세등등하던 글로벌 브랜드들은 아수라 지옥으로 추락합니다.

중국 판매 상위10개 브랜드 중 8개가 중국 현지 기업으로 교체되었고, 선진브랜드는 단 2개 파나소닉과 필립스만 살아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게 된 것이죠.
도대체 열달이라는 극히 짧은 시간 동안 중국 TV시장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이 천지개벽의 의 중심에는 바로 중국의 TV 기업 창홍 (Changhong), 그리고 이를 주도한 니룬펑 CEO가 있었습니다.

창홍이 가졌던 불만
창홍은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벌어지는 CES에도 단골로 나오는 기업입니다. 아직 글로벌에서는 그 이미지가 대단하지 않죠.

하지만 창홍의 DNA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1995년 창홍의 CEO 니룬펑은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는 자국의 TV시장 구조에 대해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국 기업의 TV 수준이 별로 떨어지지 않는데도 국내 소비자의 철저한 외면을 받고 있는 현실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글로벌 브랜드 소니, 파나소닉, 필립스 같은 브랜드는 수입품을 그대로 들여오거나, 아니면 현지에서 합작생산을 해서 브랜드만 붙였는데도 중국현지브랜드의 20% 이상의 프리미엄에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습니다. 
외국산 브랜드의 점유율은 60% 가 넘으며 거대한 중국시장을 압도하고 있었죠.  
니는 곰곰히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 이해안가는 상황에 대해 전쟁을 벌이기로 했습니다.
그가 생각한 전쟁은 파격적인 가격전쟁, 이로써 한번에 중국 TV시장의 판을 바꾼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주변 상황도 니회장의 이런 판단을 도왔습니다. 일단 창홍은 처리해야할 막대한 재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싸게라도 팔 수 있으면 이익이었죠. 게다가 창홍은 싸게 팔더라도 이익을 남길 수 있는 거대한 생산규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약 가격인하를 통해 많은 수량의 제품 주문이 쏟아져 오더라도 이를 통해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게다가 창홍은 상장기업으로 중국 현지브랜드들 중에서도 브랜드력이 좋은 축에 속했습니다. 
가격전문가를 통한 면밀한 조사를 통해 약 10%의 가격인하만으로도 시장을 충격에 빠뜨릴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이 나왔습니다.

전쟁의 시작과 전개
치밀한 계산을 끝낸 창홍은 1996년 3월 26일, 전격적인 TV 가격 인하를 발표합니다.

전 TV제품라인을 8~18% 인하한다고 발표한 것이죠. 예상한대로 시장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소비자들은 창홍의 TV를 사기위해 몰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가격전쟁을 선포한 지 불과 수주 만에 창홍은 수십년간 변하지 않았던 중국TV 시장을 단번에 뒤집어 엎습니다.
창홍의 시장점유율은 16%에서 31% 이상으로 2배 급증하면서 일약 시장 1위 기업으로 도약합니다.
결국 1년되 되지 않아 중국 TV시장의 질서는 창홍을 필두로한 중국 현지기업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되었습니다.
산악전문가들은 고산 등반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을 두려움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두려움에 빠진 사람이 '도망' 또는 '도주'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두려움에 압도된 사람은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합니다. 얼어붙어 그냥 '정지'합니다. 사실 이것이 가장 위험한 상황입니다.
창홍의 공격에 맞닥뜨린 기업들이 이러했습니다. 가격을 내리자니 적자가 날 것이고, 그대로 있자니 점유율을 잃게 될 것이구요. 두려움에 질려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사이 창홍의 점유율은 급속도로 높아졌습니다.
물론 소니와 파나소닉 같은 외국 상위기업들도 대응을 했지만 그것은 창홍이 이미 계산했던 손바닥 안 이었습니다. 예상대로 더 좋은 품질과 가치를 강조했던 것이죠. 사실 가격의 광풍이 몰아칠때 가치를 아무리 소리 높여 외쳐도 소비자들에게는 들리지 않습니다.
몰아치는 토네이도처럼 창홍의 가격인하공세가 거세게 밀어닥쳤고 바람이 그친 후 , 점유율이 올라간 생존자는 저가격이라는 대세에 따라 가격을 인하한 TCL 등 일부기업 들 몇몇에 불과했습니다.

사후 약방문이지만, 당시 중국시장내의 TV는 기술력의 차이가 미미했고, 신기루 같은 브랜드력과 대동소이한 디자인 등 차별화 격차가 거의 없었던 상황이었기에 업체들은 겸손하게 시장의 준엄한 요구에 따라 가격을 인하시키는 적극적인 대응을 하며 생존을 모색해야 했습니다. 


미국의 작가 마크트웨인은 이런 두려움에 걸린 상황을 여러번 겪었던가 봅니다. 그는 두려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당신이 지옥에 있다고 생각이 든다면 머뭇거리지 말고 전속력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라"



늑대가 나타나지 전에 대비하라 
그렇다면 창홍은 계속적으로 중국시장에서의 승자로 남았을까요
창홍 때문에 선두에서 밀려났던 소니와 파나소닉 필립스는 존재가 미미해졌지만 현재 중국의 프리미엄 TV시장은 현재 삼성 LG 등 한국 기업이 독식하고 있습니다.
창홍이 시장을 주도하게 되었지만 이후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맞추어낼 하이엔드 프리미엄 전략이 부재했던 탓입니다.
창홍은 현재 QLED, OLED 앞세운 한국 기업의 기술력과 프리미엄 전략에 쩔쩔매고 있습니다.

중국 프리미엄 TV시장에서 창홍의 점유율은 1%도 안됩니다.
하지만 가격 전쟁의 공포는 지나간 추억이 아닙니다.

저가격을 앞세운 중국기업들의 기술력이 발전하고 늘어나는 재고가 쌓이게 되면, 앞선 기업들이 혁신을 등한히 하고 가치 없는 제품을 관습적으로 파는 타성에 젖어 있다면, 중국 기업들은 저가격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높이 쳐들고 언제든 저 먼 벌판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등장할 것입니다. 
화웨이가 부르짖는 한무리의 늑대들처럼 말입니다. 
혁신과 더불어 늘 자신만의 하이엔드 전략을 준비하고 가다듬어 두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참고서적 >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654719